100년 만의 노동 대전환

현대인 불안의 원천은 실업이다. 고용에서 밀려나는 순간 개인의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 고용보험이라는 것도 일시적이다. 고용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집단의 힘을 빌었다. 그것이 노동조합이다. 노조는 고용자에 대등하게 맞서는 피고용자(노동자)를 만들었다. 특히 수백, 수천 명이 모여서 일하는 공장 노조의 경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대신, 고용자의 이익도 보호하기 위해 노동법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선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이다. 100년 전 2차 산업혁명에 의해 공장제 노동이 보편화된 이후 전 세계적 노멀이다.


100년 만에 질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난 데 이어,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긱 노동자 등)의 증가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보통 특고로 불리는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도 계속 늘고 있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퀵서비스 배달기사, 방문판매원, 대리운전자 같은 직종이다.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 3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이 사각지대가 더 이상 사각지대가 아니라 본류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과연 현재의 노동 3법으로 ‘노동 세계’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기본소득, 전국민고용보험 같은 얘기들이 COVID-19 팬데믹 때문에 갑자기 돌출된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근본 구조 변화 속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당한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그것이 COVID-19 상황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현재의 노동법은 박물관에 들어갈 것”
“새로운 노동 기본법이 필요하다”

지난 6월 여시재는 노동법 전문가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 전공)를 초빙, 세미나를 열었다. 그가 당시 말한 것의 핵심은 이런 내용들이었다.

“지금의 노동법은 전통적인 공장 노동 시대에 맞다. 말하자면 ‘공장법’이다. 이 틀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맞지 않다. 현재의 노동법은 곧 박물관에 가야 한다.”


“현재 공장에 모여 일하는 제조업이 20%도 안된다. 그런데도 노동법은 우리가 보통 블루칼라라 부르는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노동법으로 보호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점점 커진다. 앞으로 노동법이 적용되는 현장이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는 노동법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취업 형태를 포괄하는, 다수의 노동자를 위한 계약 중심의 새로운 기본법이 필요하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은 이미 노동법 전환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기본소득과 전국민고용보험도 노동법 재편 문제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한 번의 세미나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더 묻고 더 듣고 싶은 게 많았다. 4차 산업혁명과 언택트 시대 돌입으로 인한 노동 형태의 변화, 사회보험 및 복지 제도의 불균형, 노사정 기구와 전국단위 노동조합(민노총 등)의 한계…. 박 교수를 한 번 더 초빙, 노동과 고용, 그리고 제도를 둘러싼 여러 관련 이슈에 대해 그의 의견을 묻고, 답을 들어봤다.


박 교수는 고려대 법대를 나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에서 노동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유일 노동전문대학원인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도 맡고 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교 바깥 활동도 활발하다.


인터뷰는 여시재 이명호 기획위원이 맡았다. 이 위원은 ‘노동 4.0’를 쓰는 등 4차 산업혁명기 고용과 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전문가다.

Q. ‘노동 4.0 시대’라 한다. 이전 시대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는 의미일 텐데 어떻게 다른가?


A. 노동 4.0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탈경계’다. 지금까지는 노동자와 비노동자를 구분하는 요소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요소였다. 사용자가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는 것이 ‘고용’이다. 이를 전제로 한 것이 우리 노동법이다. 그러나 디지털에 기반한 노동 4.0 시대에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노동 통제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9시 출근, 6시 퇴근, 연장야간 근로, 이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간에 자유로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노동관계는 근로자의 ‘충성적’ 요소에 대한 보상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근로시간, 업무량 같은 물리적 요소 대신 퍼포먼스(성과)가 새로운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이미 많은 젊은 세대들이 자기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얼마나 프로페셔널로, 전문가로 인정과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더 이상 경영하는 사람은 모든 전문 분야에 대해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노동법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Q. 앞으로 어떻게 개편해나갈지에 앞서, 현재의 노동법이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변화를 거쳐 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A. 우리 노동법의 시작은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가던 1953년이었다. 미국, 특히 일본(1946년 제정) 등 외국 입법례 조합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노동법이 적용될 수 있는 물적 기반이 없었다. 노동자 개념도 없었다. 산업 조직으로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이뤄지면서 물적 기반의 단초가 만들어졌다. 1970년 전태일 사건이 우리 노동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 효시라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법과 자기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노동자라는 자기 정체성이 생겼다. 노동 세력이 비중을 가지게 되었고 그 노동자에게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하는 기업도 지위가 명확히 이뤄지던 단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신 시대로 전환했다. 외국에선 노동자 권리 의식 등이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우리는 반대로 갔다. 근로자들의 의식은 커나가기 시작했으나 반대로 억누르는 정치적 기제가 작동했다. 이게 1980년대 중반까지다. 그때의 노동법은 모든 정책의 방향이 국가 경제 지향에 맞춰졌다. 노동자는 참아야 한다는 기조였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억눌렸던 것이 분출했다. 그 시점에 비로소 한국에서 노동법이 현대화된 모습을 갖게 된다. 1980년대 이전에는 노동조합도 기업단위로만 국한됐다. 국가와 기업이 통제하기 쉬운 형태였다. 제3자 개입금지 등으로 외부의 영향을 차단했다. 1987년 법 개정 이후 권리의식이 커지면서 노동법도 거기에 맞춰나가게 됐다. 논란이 됐던 정치적 규제를 걸러내는 시기였다. 이 시대 노동법의 마지막 이슈가 복수노조 문제였다. 복수 노조는 1997년 IMF 이후 그 이슈가 어젠다화 되고 2011년 합법화됐다. 자유주의적 노동운동의 기초가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Q. 그러나 지금 노동법과 현실의 충돌 또는 괴리가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흐름의 변화가 무엇이라 보는가?


A. 문제의 기본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물적 토대의 변화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이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두 가지 축의 큰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첫째 노동의 방식과 추구하는 이익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경제적 토대가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 노동의 도구로 활용될 여러 새로운 기술이 다각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도구들이 노동을 새롭게 재정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누가 누구와 계약을 체결해 언제, 어디서 일하는지에 대한 약속이 바뀌고 있다. 과거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요구했던 계약 내용과 앞으로의 내용은 분명히 달라진다.


둘째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다. 이제 나이 든 사람들은 더 오래 노동 시장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들에게 미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못하고 있다. 노동법은 단순히 급여를 얼마나 주고, 근로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는가의 1차원적 문제가 아니다. 노동으로, 직업을 가지고 잘 살 수 있도록 훈련과 교육을 매칭 시켜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 노동법이 있어야 한다. 모든 노동 정책이 단기 과제 중심이라 장기적 관점에서 저출산 고령화라는 현실과 조화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Q. 현행 노동법이 머지않아 박물관에 가야 한다면, 어떤 방향에서 새로운 노동법을 설계해야 할까?


A. 지금까지 우리 노동법은 1970-80년대의 공식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 인권 관점으로 접근해 노동존중정책을 펴겠다는 식이다. 앞으론, 그리고 지금도 그래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은 과거엔 인권의 문제였으나 이제는 아니다. 시장의 문제다. 30년간 운영해오면서 근로자 중위임금의 55%에 이르렀다. 진보·보수 정권을 거쳐오면서 이룬 결과다. 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노동계는 중위 임금이 아니라 임금 평균에 맞춰 달라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나 합리적 결정을 인정하지 않은 주장이라 본다. 현 정부는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노동과 자본, 기업과 노동의 관계를 세밀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586세대로 대표되는 정치권에서 노동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이 그들이 노동운동을 하던 당시엔 맞았을 수 있다. 억압되어 있었고 정상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던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 똑같은 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

“모두가 대기업 정규직이 될 수는 없다”

Q. 앞서 30년간의 제도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압축할 수 있을까?


A. 기업이 흥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나라 경제가 돌아간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지금 모두가 대기업 근로자가 될 수 있을까? 모두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한계산업이 몰락해갈 때 다른 성장산업이나 혁신산업으로 옮겨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새로운 성장이나 혁신산업에서 고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한계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30%나 된다. 그 부분을 복지제도로 대신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입장이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복지정책을 펴고,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건 국민들에게 하나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노동을 1980년대 민주화 시대의 시각에 갇혀 보고 있다. 그게 아니라 플랫폼이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올 것인지, 취업 구조가 얼마만큼의 기간 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따져 봐야 한다. 뉴이코노미 시대에 맞는 노동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20세기 말부터 그 고민을 시작했다. 플랫폼 노동이 가지는 개방성과 자율지향성을 어떻게 촉진시켜줄 것이며, 동시에 종사자들에게 어떻게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해 줄 것인지 고민했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노동법이 추진해야 할 과제와 상황이 이전의 근로기준법의 과제와 상황과 다른 점이다.

“기업과 근로자는 종속관계 아냐
공동의 설계자로 재정립해야”

Q. 다음 대선까지 2년도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 최소한 노동 문제에서 우리 사회에서 합의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며, 그때까지 뭘 준비해야 할까?


A. 노동 측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혁신 방안이 있다.


첫째 근로기준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은 분명 과거와 다르다. 근로기준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 부분을 ‘노동법의 현대화’라고 말하고 싶다. 사업장에 조금 더 자율 공간과 자치 공간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경쟁 주체가 기업이고, 기업과 근로자는 과거의 수직적 종속 관계가 아니라 혁신 측면에 있어 공동의 설계자, 협력적인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근로시간, 휴식제도 등을 노사가 함께 결정하는 것부터 개방시켜야 하지 않을까.


둘째는 취업형태의 다양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 중심으로 모든 게 흑백논리에 따라 움직여왔다. 플랫폼 노동, 긱 노동 등 다양한 형태가 점차 늘어가는 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면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 20세기 유럽에서는 그 중간 형태가 더 많았고, 계속해서 확장해나가는 추세다. 우리도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자율형 보호법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동시에 근로계약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사안별로 특별법을 만들 수 있지만 그 경우 각기 다른 법마다 적용 대상을 가리는 신분 평가를 별도로 해야 한다. 여간 까다롭고 민감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계약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ground floor, 1층에 해당하는 기본법을 만들면 어떨까. 일하는 사람은 여기에 모두 편입되고, 최소한의 보호 규칙과 분쟁 조정을 위한 합리적 조정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앞으로 노동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형태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법을 난립시키는 것보다 이게 나은 방향이 아닐까 싶다.

“유럽식 ‘노동평의회’ 도입
검토할 필요 있다”

Q. 노동조합은 어떤가?


A. 노동조합은 ‘노동 2.0 시대’에 만들어졌다. 대량생산, 대량노동 양식에 따라 모든 근로 조건을 표준화‧획일화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오늘날 다원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노동조합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다 모일 수 있을까? 노동조합 결성은 자유다. 자유이기 때문에 비는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유럽에는 ‘노동 평의회(Works Council)’라는 조직이 있다. 다양성을 가진 종업원 집단별로 각기 대표하는 자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이들이 사업주이 여러 의사결정에 대등하게 참여하는 제도이다. 사업주와 근로조건에 대해 협상도 하고 직원의 인사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역할이다. 근로자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로 활용되고, 자연스럽게 경영 과정에도 참여한다. 우리도 그런 새로운 근로자 대표제도를 통해 노동조합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 현재 300인 이하 사업장에서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 미만이다. 법으로 강제해서라도 대표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인사와 경영, 근로조건 논의 테이블에도 참여하는 형태의 조직이 필요하다.

“국민은 신중하고 객관적인 접근에 호응
나는 미래를 낙관한다”

Q. 이 과도기적 상황이 순조롭게 전환될 수 있을까?


A. 국민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보다 논리적이고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에 국민들이 더 호응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국민의 선호도와 지지에 종속되기 때문에 결국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분명 지나간 과거보다는 지금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낸 우리 국민들은 훨씬 더 논리적이고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을까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