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 21세기형 노동법 만들자 (下) / 플랫폼시대 新노동법 ◆




기존 임금노동자와 새로운 플랫폼 노동자를 모두 포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동법이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 특성상 근무시간과 장소를 본인이 선택하는데, 사용자가 업무를 지휘·감독한다는 전제하에 만든 현재 노동법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법 테두리에 들어오게 하려면 `중간 단계` 보호와 의무를 규정하는 `근로계약기본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본적으로 `계약법`으로 접근해 계약 해지 통보 및 보수 분쟁 시 절차 등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 기존 근로기준법 확장은 어려워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을 기존 노동법 체계로 포섭하는 방안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지만 산업이 다변화되고 근로 제공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종속적 관계가 희박한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종속성이 강한 특수고용직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이는 전체 플랫폼 노동자 중 일부에 불과하다.

또 힘겹게 대법원까지 가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아도 이는 소송 당사자에게만 효력이 있을 뿐이다. 노동환경은 급격히 변하는데 매번 판결을 기다리는 건 비현실적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으로는 포섭이 곤란하다"며 "이를 넓게 해석하자는 논의도 있으나 근로기준법 내에 보호 내용의 차등화는 복잡하고 부작용이 예상됨에 따라 입법 가능성이 낮다. 플랫폼 노동자의 다양성(업무 수행 방식, 직업적 능력, 생계 의존도 등)을 반영한 노동법 보호 방식의 차등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새로운 체계 만들어 그룹 나눠야

기존 임금근로자는 계속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되 이를 적용하기 어려운 특수고용직이나 플랫폼에 대해서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즉 근로기준법 외에 새로운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특정 업종을 규율하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포괄하는 `근로계약기본법`을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가사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꼽을 수 있다. 이 법률은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서면 근로계약을 체결해 근로 조건을 보호하도록 한 것을 골자로 한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은 "그동안 가사서비스는 근로기준법 제외 업종이라 어느 누구도 고용관계를 맺을 수 없었는데 직업소개소나 플랫폼 업체가 직고용할 수 있게 한 법"이라며 "정부가 인증해서 시장을 양성화하고 플랫폼 기업도 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서비스 제공 업체에 정부 인증 의무를 부과하는 건 아니다. 인증 여부는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데, 집을 맡기는 가사서비스 특성상 이러한 인증을 받은 업체가 시장에서 신뢰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미 인터파크에서 분사한 `대리주부`는 법 시행 이전부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가사노동자를 직고용하고 있다. 노동법적인 접근이 아니라 산업정책을 통한 시장 양성화도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 근로계약법으로 최소한의 보호를

이런 접근은 모든 업종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업종마다 사정이 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의 본질은 노동자가 본인이 일할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지휘·감독한다면 이전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더 취약한 이들에게는 전통적인 임금근로자만큼의 보호는 아니라도 최소한의 보호가 필요하다. 예컨대 영국은 전통적인 피용자(employee)가 아닌 독립노동자(worker) 개념을 둬 부분적으로 보호한다.


새로운 취업 형태를 포괄하는 `근로계약기본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박 원장은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을 시 서면 계약을 강제하고 여기에 해지 통보 절차 및 보수 분쟁 시 절차를 규정해야 한다"며 "공정한 계약이 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만드는 법"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처럼 해고 제한이나 연차유급휴가 등 강력한 보호망은 제공되지 않는다. 이런 보호는 현실성도 떨어지고 오히려 사업주에게 지나친 부담이 돼 시장을 음성화할 수 있다. 다만 근로자계약기본법은 서면계약, 해고 통지, 휴식(휴가와 휴일) 등을 보장한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노동을 위한 법적 보호를 마련하자는 의미다. 박 원장은 "해외 사례를 보면 휴식권이 제일 큰 요구 사항"이라며 "계약 관계가 유지되면서 적절한 휴식을 취하게 해 달라는 것인데 카르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의 협상 채널, 즉 종사자 대표 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